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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속삭임, 바키타를 아시나요?

by insight5988 2025. 5. 23.

세상에는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생명체들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 하나인 ‘바다의 유령’이라 불리는 바키타(Vaquita)를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바다의 속삭임, 바키타를 아시나요?
바다의 속삭임, 바키타를 아시나요?

 

 

작고 수줍은 이 해양 포유류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돌고래로, 현재 인류의 무관심과 욕심 앞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멕시코 북서부의 바다 속에 조용히 살아가던 이 작고 아름다운 생명체는 왜 이제 '지구상에서 가장 위태로운 동물'이 되었을까요?

 

바키타란 누구인가?

바키타는 스페인어로 ‘작은 암소’라는 뜻입니다. 공식적인 이름은 Phocoena sinus, 한국어로는 ‘캘리포니아만 쇠돌고래’로 불립니다. 멕시코 캘리포니아만(Sea of Cortez) 북부의 극히 제한된 해역에서만 서식하는 이 돌고래는 1958년에야 처음 발견되었을 정도로 은밀하고 드물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성체의 길이는 약 1.5m, 몸무게는 40~55kg 정도로 돌고래 치고는 매우 작은 편이며, 가장 큰 특징은 눈 주변과 입 주변에 짙은 반점이 있어 마치 화장을 한 듯한 귀여운 인상을 준다는 점입니다.

그들의 삶은 조용하고, 수면 위로 떠오를 때조차 소리 없이 잠시 숨을 쉬고는 다시 물 아래로 사라집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바키타는 그 존재를 연구하는 것조차 매우 어렵고, 실제로 사람 눈에 띄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10마리 미만, 멸종 직전의 비극

바키타가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한 주된 이유는 인간이 설치한 불법 어망 때문입니다. 멕시코 북서부 지역에서는 멸종 위기 어종인 토토아바(Totoaba)의 부레를 잡기 위한 불법 어업이 성행해왔습니다. 이 부레는 중국 일부 지역에서 약용으로 쓰이며, 시장에서 수천 달러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 토토아바를 잡기 위해 사용되는 대형 저인망과 주낙 어망에 바키타가 함께 걸려 익사한다는 점입니다. 바키타는 호흡을 위해 정기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하지만, 어망에 걸리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대로 익사하게 됩니다.

전 세계 해양 생물학자들과 환경 단체들이 수십 년간 보호 노력을 기울였지만, 2010년대 이후 개체 수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1997년: 약 600마리

2015년: 약 60마리

2023년: 10마리 이하로 추정

이미 자연 번식으로 회복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되며, 일부 과학자들은 "실질적인 멸종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바다 어딘가에서 살아 있는 몇 마리의 바키타가 있다는 사실이, 완전한 절망을 막아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

바키타 보호를 위한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바키타 서식 해역에서의 어업을 금지했고, 국제 비정부기구들과 해양 환경 단체들도 해당 지역을 감시하며 불법 어망 제거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속이 쉽지 않고, 지역 어민들의 생계와도 직접 연결되어 있어 매우 민감한 문제입니다.

과거 바키타를 보호하기 위해 포획 후 인공 번식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포획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바키타가 폐사하면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습니다. 결국 지금은 자연 상태에서 그들의 생존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전략이 수정되었습니다.

바키타는 지금 우리 눈앞에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는 생명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1~2년 사이에 ‘멸종’이라는 단어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 작은 돌고래는 인간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으며, 그저 바다에서 평온하게 살아가고자 했을 뿐이라는 것을.


바키타는 존재 자체가 경이로운 생명입니다. 그 귀엽고 조용한 모습, 아주 좁은 바다 한 구석에만 살아가는 희귀함, 인간의 탐욕 앞에 무기력하게 줄어가는 그 수치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 어딘가에서 한 마리의 바키타가 숨을 들이쉬고, 수면 아래로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 존재를 잊지 않고, 지켜보며, 이야기한다면… 어쩌면 희망은 아주 조금 남아있을지도 모릅니다.